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난 코르테스 (문단 편집) === 전쟁 행위 자체에 대한 책임 === 빼어난 능력과 큰 성취로 오랫동안 코르테스는 [[엘 시드]]의 뒤를 잇는,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과 기독교화의 주역인 대영웅으로 존경받았다. 페르난데스 오비에도는 코르테스를 [[엘 시드]]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맞먹는, 아니 그들을 능가하는 대영웅으로 평가했고, [[이탈리아]]의 파올로 조비오도 코르테스를 고대와 중세의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로 높이 평가했다. 오랫동안 코르테스는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라스 카사스 신부]]를 비롯한 일부 인물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영웅으로 평가받았다. 스페인에서는 한때 지폐의 모델로 쓰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이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독립하고 피정복자인 원주민들의 관점을 중시하는 수정주의 및 민족주의 사관이 대두하면서 코르테스의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코르테스는 강제 개종과 제국주의적 정복을 일삼은 악당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사관이 떠오르면서 코르테스의 평가는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선 멕시코 역사가 돈 마누엘 오로스코 이 베라를 시작으로 대영웅과 학살자 사이의, 객관적 접근을 중시하는 제3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후 서구 [[제국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코르테스는 제국주의 침략의 첨병으로도 여겨졌으나, 15세기 [[콩키스타도르]]의 정복과 근대 서구 제국주의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이는 다소 무리하게 여겨진다. 오히려 콩키스타도르의 정복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칭기즈 칸]]의 유라시아 정복 등 전근대의 정복과 궤를 같이 하는 면이 많다. 일단 코르테스 자신이 무장집단을 이끌고 타국을 침략한 정복자인 이상 전쟁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개나 결과가 어쨌든 간에 [[신대륙]]의 부를 획득하려는 의도에서 침략을 감행했고, 아즈텍인들이 스페인인들에게 먼저 시비를 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스페인군이 왔을 때 원주민 세계는 이미 약육강식의 전쟁판이었고, 약소국은 엄청난 공물을 바쳐야 했다. 그들 사이에서의 포로는 인육이 되어 먹히는 등의 취급을 받았고, 이 지역은 당대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가혹한 곳이었다. 코르테스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강자로써 들어왔을 뿐 도덕적으로 원주민보다 더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또한 개전의 책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침략 전쟁을 죄악시하는 인식은 근대에 들어서고도 꽤 세월이 흐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확립되었고, 코르테스가 활동하던 16세기에는 그런 의식이 나타날 기미조차도 없었다. 오히려 (승리한) 전쟁은 영토 확장 행위로서 칭송받았고, 더욱이 [[이교도]]를 향한 전쟁은 위에서도 보듯 [[성전]]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당대의 다른 인물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군주나 군벌치고 정복과 침략 전쟁을 주도하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었고, 또 이를 죄악시하는 시선 또한 전무에 가까울 정도로 없었다. 따라서 전쟁 행위 자체로 코르테스를 비난하는건 정말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복을 이유로 코르테스를 비판하는 순간 21세기에도 존경받는 전근대 시대의 명군들 절대 다수 또한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코르테스 이상으로 침략 전쟁을 벌인 군주들은 칭송 일색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러한 논란이 있는 것 자체가 코르테스가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첨병"이라는 현대의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부당하게 비난받는 인물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